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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아빠 /차경나
 > 2010-1-15 10:15:00 조회 : 393 

차경나 (연길시10중 3-4) 

지난해 7월, 나는 길림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비호컵》글짓기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아안고 한국문화탐방의 길에 올랐다. 밤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할무렵 비행기창으로 내려다보니 한국의 야경은 그야말로 빛으로 수놓은 비단을 방불케 하였다.

모든 면역검사 등 절차를 마치였다. 그런데 마중나온 아빠를 보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반짝이는 구두에 양복차림으로 나오는가 했는데 슬리퍼에 청색운동복이였다. 그런데 아빠는 나의 기분을 아는지 마는지 동행한 선생님들과 한분한분 악수를 하면서 《우리 딸님을 보살피느라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하며 담배 한개비씩 권하는것이였다.

7박8일중 첫 며칠은 자유행인지라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눈 후 각자 자기의 길을 떠나야 했다. 

《그래,아빠랑 좋은 시간 보내라.  4일후 서울역에서 집합하자.》

  동행한 선생님들의 인사를 받으며 나는 아빠를 따라가게 되였다. 아빠가 사는 곳은 송정역 부근의 대곳송마리 1리였다. 나는 《슬리퍼 아빠》랑 뻐스에 올랐다. 뻐스안은 어찌나 조용한지 숨쉬는것조차 무안할 정도였다. 그런데 아빠의 큰 소리, 연변말투이다.

《저건 한강이란다. 저길 봐라. 저길.》

《저긴 드라마를 촬영하던 곳이란다.》 

…… 

자꾸만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드디여 지하철을 바꿔타고 또 마을뻐스를 바꿔타고 두세시간정도 걸려서야 아빠가 사는 곳에 도착했다. 한국 TV에서 보던 푸르미엄, 현대같은 아빠트인가 했는데 외할머니네 농촌마을과 다른것이 없었다. 우리 학교 숙소만한 크기의 공장에 아버지 혼자뿐이였다. 그날은 지친 잠으로 끝마치였다.

다음날 아침, 아빠는 나를 데리고 동대문시장에 찾아갔다. 처음 신발가게에 들리였다. 나는 녀자애인데도 발이 어찌나 큰지 41호 신발을 신는다. 그래서인지 연길시내의 신발가게를 다 돌아다녀도 41호짜리 녀자신발이 없어 남자신발매대에서 신을 골라야 하였다. 그래서 한국에 갈 때 신발매대에 들리려고 작심했다. 그런데 동대문시장에 41호짜리 예쁜 운동화가 있었다. 값을 물어보니 5만원이였다. (5만원이면 중국돈 250원인데, 너무 비싼데.) 그런데 내가 하겠다는것이면 뭐든 다 해주는 아빠는 선뜻 꾸깃꾸깃한 5만원을 내주려 하였다. 그때 나는 문득 아빠의 신발을 보게 되였다. 어제와 같은 슬리퍼였다. 그러고보니 어제 저녁에 봤던 아버지의 신발도 도합 서너컬레뿐이였다. 슬리퍼 그리고 낡은 운동화 몇컬레… 나는 눈시울이 촉촉해났다. 

《안 사겠습니다. 너무 비쌉니다. 예쁘지도 않습니다.》

나는 5만원을 주려는 아빠한테 거짓말하곤 신발가게에서 나왔다. 아빠는 계속 사라고 하였지만 나는 고집을 부리며 2천원짜리 분홍색 슬리퍼를 샀다.

나는 아빠보고 구두를 사라고 하였다.

《사업도 하지 않는데 구두가 뭐 필요하니? 공장에서도 혼자 일해서 보는 사람두 없다. 아빠한테는 슬리퍼가 제일 편하다.》하고 아빠는 거짓말을 하셨다. 내 기억속에 아빠가 구두신었던 모습은 고작 몇번이였다. 아빠가 한국에 나오기 전 대우호텔에서 근무할 때 구두를 신었었고 할아버지, 할머니 환갑식날에 구두를 신었었다. 아빠가 구두 신은 모습은 참 멋졌었는데…

며칠후, 나는 한국문화캠프에 참가하였다. 그때 아빠와 나이가 비슷한 대구대학교의 여러 선생님들이 신은 반짝반짝 빛이 나는 구두를 보면서 지금쯤 공장안에서 땀냄새때문에 슬리퍼를 끌고 부지런히 뛰여다니실 아빠가 떠올랐다. 아빠는 그렇게 번 돈으로 나한테 한국핸드폰을 선물했고 한국에 와 기죽지 말라며 용돈도 푼푼히 주셨다.

아빠는 내가 중국으로 돌아갈 때 인천공항에 배웅을 나오겠으니 한국에서 사준 핸드폰으로 꼭 전화하라는것이였다. 나는 인천공항에 나와도 10분밖에 못 보는데 왜 그 먼데서 몇시간동안 새벽차를 타고 오느냐고 하였지만 아빠는 계속 나오겠다는것이였다.

우리가 중국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 아빠는 정말로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간밤에 송정에 내려온 후 친척집에서 한잠 자고는 새벽차로 오셨다고 한다. 대구대학교팀장선생님은 《참 좋은 아빠네요.》 하고 칭찬하셨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아빠가 멋져보였다. 비록 그때도 슬리퍼를 신고 계셨지만 조금도 창피하지가 않았다.

그렇다. 나의 아빠, 대구대학교팀장처럼 높은 권력도 없다. 멋진 구두도 신지 않았다. 하지만 《구두아빠》가 아니여도, 《슬리퍼아빠》, 《운동화아빠》여도 나에 대한 사랑만은 남부럽지않다. 이런 아빠한테서 나는 못난 허영심을 조금씩 버려간다. 아빠, 비록 슬리퍼아빠일지라도 사랑해요!

[인터넷길림신문 2010-01-14 오전 7: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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