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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조선족은 어디로 갔을가》
 > 2010-1-27 8:48:00 조회 : 327 

일전 기자는 심양 서탑에서 경북 문화재연구원 사무처장 정근재씨와 마주앉았다. 우리의 화두는 그가 영남일보기자시절 집필한 《그 많던 조선족은 어디로 갔을가?》란 책자였다. 

이 책은 정근재씨가 2004년에 36일동안 동북3성과 내몽골일대의 경상도출신 조선족집단거주지 22곳을 돌면서 본대로, 들은대로, 느낀대로 기록한 결과물이였다.

책은 특히 제3부 “개혁개방에 앞장선 료녕성”이란 타이틀에서 “풍요로운 문화생활 누리는 농촌속 도시”란 제목으로 소가툰 화원신촌을, “거대한 조선족자치향 꿈꾸던 경상도마을”이란 제목으로 소가툰 신흥촌을 상세히 소개했다.

정근재씨가 조선족동포사회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것은 어릴적 어머니로부터 작은외할아버지가 일제강점시기 만주로 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였다. 정근재씨는 1993년부터 중국에 수차례 왔었지만 조선족동포사회를 깊숙이 들여다볼 기회를 좀처럼 찾을수 없어 늘 아쉬웠다.

그런데 기회는 뜻밖에 찾아왔다. 2002년부터 영남일보에서 “마을”이라는 타이틀로 련재를 시작, 잘만하면 이것이 중국으로까지 이어질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다. 련재가 40여회 진행됐을 때 그는 지도부에 이 련재를 중국으로까지 확장하겠다는 의도를 설명했다. 마침 당시 도지사이던 리의근지사가 일제강점기시대 만주로 떠난 경상도사람과 그들이 사는 마을을 한국신문사상 처음으로 취재하겠다는 그의 기획의도를 듣고 선뜻 재정지원을 약속했다.

사실 중국으로 떠나간 경상도출신 조선족동포의 현황과 그들이 처한 현실을 파악하고 이들을 고향사람으로 보듬어주는 일이야말로 암울했던 력사를 발굴하고 복원하는 한편 해외동포사회의 련결고리 하나를 더 확보할수 있는 중요한 사업이라는것이 정근재씨의 일관적인 주장이다. 사는 곳이 다르고 소속된 국가와 국적이 다르다는 리유로 서로 무관심하게 지내는것은 국경이 없고 사람이 재산인 현대국제사회의 조류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정근재씨는 말한다. 

그동안 기초자료를 면밀히 준비한 그는 2004년 4월 드디여 “중국속의 경상도마을을 찾아서”라는 취재목적을 가지고 북경행비행기에 올랐다. 중국에 도착한후 미리 한국에서부터 련계해놓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일사천리로 동북3성과 내몽골지역의 경상도출신들이 모여사는 마을 22개를 순방하고 하나하나 기록해나갔다.

가는 마을마다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 특히 같은 사투리를 쓰고 같은 고향인 경상도에서 찾아온 그를 얼싸안고 고향생각을 하며 눈물짓는 로인들의 험난했던 중국이주 및 정착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하면서 늦게나마 찾아와 기록하는 일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가슴 한켠엔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수 없다는데 대한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또 조상들이 어렵게 개척한 마을을 등지고 뿔뿔이 한국으로 중국 연해도시로 떠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어쨌든 나는 이같은 취재려행을 하면서 아직까지 경상도말을 쓰면서 경상도사람들의 기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있는 동북3성의 경상도출신 조선족들에게 감탄하는 일면 존경심마저 느꼈다”고 그는 고백했다.

취재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한국에서 곧바로 “마을 2부, 중국속의 경상도마을” 련재를 시작했다. 반응은 예상대로 좋았다. 신문기사를 모으고있다는 사람으로부터 만주로 떠난 다음 련락이 두절된 친척을 찾는데 도움이 될것 같다는 독자, 현지를 방문하려면 어떻게 찾아가야 하냐고 문의하는 사람, 중국에 경상도출신들이 그렇게 많이 살고있는지 몰랐다며 격려해준 독자, 자료를 요구하는 학생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관심을 보내왔다. 그가 근무하던 신문사가 대구, 경북을 주요기반으로 하는 언론사인지라 조선족사회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고 특정지역출신의 조선족마을만 소개한 한계는 있었지만 나름대로 상당한 보람을 얻었고 1년뒤에는 《그 많던 조선족은 어디로 갔을가》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게 되였다.

“이 책은 처음부터 많이 팔릴것으로 생각하고 펴낸것은 아닙니다. 책의 내용상 민족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만 흥미를 보일것으로 판단하고 국내 각급 도서관과 언론사 등에만 배포하고 서점에는 많이 배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뿌린 작은 씨앗이 다른 언론사의 관심을 끌어 지금도 조선족 관련 방송프로그램이나 신문기사 등에 참고가 되고있습니다. 저의 현지취재를 계기로 한국, 특히 경상도지역에서는 중국의 조선족동포사회가 함경도나 평안도 출신뿐만이 아니라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 등의 출신지역별로 다양하게 혼재된 사회라는 사실이 폭넓게 알려지게 됐지요. 이와 함께 경상북도가 늦었지만 경상도출신 조선족동포사회에 기여할 방법을 찾고있는것도 저에게는 작은 보람입니다.”

정근재씨는 조선족사회에 존재하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회피하지 않았다. “제가 볼 때 현재 조선족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떨어져사는 가족이 많아지는, 다시 말해 리산가족이 너무 많아지고있다는것입니다. 일부 가족은 고향이나 고향 린근도시에 살고 일부는 한국이나 연해도시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것이 너무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는것은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그 반대급부로 얻게 되는 돈이라는 매력적인 존재가 리산의 아픔이라는 희생의 대가보다 더 클것인가 하는것은 엄숙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끝으로 그는 “지금까지 조선족사회가 중한교류에 커다란 가교역할을 해온만큼 앞으로도 이같은 역할을 통해 조선족사회가 더욱 굳건한 기반을 다지기”를 기대했다.   

[2010-1-26 인터넷료녕신문 김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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