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때 고향마을 한 복판을 가로지나 흐르게 된 하나의 내물이 있었다. 그때 새까만 《고추》를 달고 사내라고 동네 형들을 본받아 그물주머니를 들고 엉뎅이를 훤히 드러내놓은채 물고기를 잡는다고 내물에서 허덕이던 그 천진했던 동년이 오늘날 하나의 그림자마냥 인생 40대의 허허벌판에서 별나게 유혹을 불러일으킨다.
물고기는커녕 물고기와 비슷한 벌레 새끼 한마리 잡지 못했어도 파랗게 들여다보이는 내물에 뛰여들어 물장구치던 그 모습, 동네 형들의 그물주머니를 고간에 감추어두고 어른들의 눈을 피하던 그 천진했던 동년 그리고 고무신 한짝을 접어서 내물에 띄워놓고 내가 만든 호화군함이 태평양을 넘어 할아버지의 옛말을 주렁주렁 가득 싣고 한국 경상남도 할매, 할배의 고향인 합천으로 떠나간다고 환호성을 터뜨리던 그 추억 모두가 어제런듯 그립기만 하다.
오늘 파아란 하늘을 그려가던 내물이 언제부터인가 알게 모르게 시누런 흙탕물로 번지여 곱게 자라던 물고기들이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어버린 내가에서 하루종일 두 눈을 파며 물속을 살펴보아도 눈먼 고기새끼 한마리도 가려볼수 없는것이 바로 고향의 처연한 아픔이 아닐가. 너와 나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는 고향이란 아픈 추억의 향기와도 같은 곳이다.
그러나 그 고향의 향기는 알게 모르게 언제부터인가 비좁은 사람들의 인심속에 파리하게 변해가고있지 않는가? 고향의 내가에서 어릴 때의 추억을 끄당겨 보려고 하얀 샤츠를 입은 어깨에 물고기발을 둘러메고 물고기들을 구슬려보아도 그 추억은 시종 아리숭하기만 하다. 그것은 고향의 아픈 추억이 하나의 색갈로 되여 연하게 바래여지는 알수 없는 인심때문이 아닌지, 물고기 하나 걸리지 않는 채발을 마루우에 팽개치며 노여움을 터뜨려도 역시 하나의 눈먼 추억으로 남는 암흑의 연장뿐이였다.그러니 너와 나의 아픈 가슴을 어루쓸어주는 향기가 고향이라면 또한 너와 나의 아픈 가슴에 덫을 놓는것 역시 고향인줄로 알았다.
왜서…?!
고향이란 바로 사람이 태여나서 정이 들고 삶을 늘인 고장이여서, 그러나 그 고향에 키워온 인심이 오늘은 말그대로 너무나 무자비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언젠가 40여년만에 찾은 고향의 변모에 놀란 마음을 금할수 없었을 때 그만치 놀란 가슴에 시퍼렇게 살아나는 멍 때문에 아연해지고말았다.
지난 세기 그처럼 간고하던 세월, 먹고 입고 쓸것마저 변변히 없이 살던 나의 동년 시절의 그 힘든 세월에도 자물쇠가 무엇인지 모르던 고향이, 오늘은 집집마다 쇠발통 같은 보기 흉한 자물통을 걸어놓은것이다.
하물며 그것도 모자라 고향, 농촌집집마다 흔히 볼수 있는 울바자곁에 따로 지은 위생실(변소)에까지 자물쇠를 놓고 고향을 찾는 사람들에게 매정한 낯선 인심을 자랑할줄이야. 너무나 아연한 아니, 너무나 가슴이 쓰리고 아픈 처절한 마음이였다. 고향은 이처럼 천박하게 변하였는가? 하는 의심을 버릴수가 없었다.
어찌보면 나의 고향이, 아니 우리 모두의 고향이 변모하는 세월과 더불어 인심도 알게 모르게 연하게 바래여지는것은 무엇때문인지… 텅텅 비여가는 초가집들에도 커다란 자물쇠가 댕그라니 걸려 기약이 없는 주인을 기다리고있었다.
―순이야! 철이야!
―꽁꽁 숨어라! 머리끝이 보인다! 발끝이 보인다! 숨박꼭질로 아우성을 떨던 널직한 탈곡장마당이 키넘어가는 쑥밭으로 변해 발을 들여놓기조차 무서워난다.줄줄이 떠나가버린 빈 집들이 서성이는 가을바람에 창호지를 펄럭이며 발길을 잡아도 다시 돌아올수 없는 순이, 철이…
나는 고향을 사랑한다.
나의 인생을 키워주고 생활을 보듬어주고 터득시켜준 고향이기에 나는 더없이 애착하고 사랑한다.그러나 아귀아귀 비여가는 빈 집에조차 커다란 자물쇠를 잠그고 불러도 묵묵부답으로 대답없는 고향의 인심에 《고향에 살면서도 고향이 그립습니다》란 가슴 아픈 사연을 시종 털어버릴수 없는 그 마음이 애닯기만 한것은 또 어찌할고?
문득 세상 뜬 할아버지께서 늘 풀이하던 옛말의 한구절이 하얗게 떠오른다…
두만강을 건너 물개마을사람들이 지어준 움막에 너의 할매랑캉 보따리를 풀고 이집 저집 올망태기에 담아다 준 감자와 보리로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에 일찍 잡도리를 해서 일궈논 화전에다 조선에서 가져온 옥씨(옥수수)와 마을분들이 배를 곯으면서도 남겨준 감자씨를 박고 어찌나 웃음이 나오던지. 더우기 그해 가을에 개대가리 같은 감자들이 주렁주렁 호미끝에 끌려나올 때 허허… 그때 없이 살았어도 그 인심이 좋았지.
그 살가운 인심때문에 우리 같은 이민족이 땅없는 이국땅에서도 자리를 붙이고 오늘까지 살아올수 있었던겨. 지금은 얼마나 좋은겨. 국가에서 땅도 주고 못사는 우리 농군들을 잘 살수 있도록 이끌어도 주고… 허허허. 공산당이 좋긴 좋지비. 내사… 이제, 너희들은 할애비들이 일궈놓은 이 땅, 너희들의 고향인 물개마을을 잘 살피거라이!
할아버지는 노상 이야기끝에 고향에 대한 분부를 아쉬움으로 끝마쳤다.그러나 오늘 다시 찾은 고향의 모습에 할아버지의 옛말이 펄럭이는 창호지를 따라 한적하게 어디론가 사라져가는 기분이다.더우기 집집마다 온갖 문마다에 자물쇠까지 놓고 꽉 막힌 인심을 어떻게 열가 하는 부끄러운 생각에 어릴 때의 그 천진한 마음을 담아 갸웃이 들여다본다!
부디 우리의 고향이 그리움에 그치는 숨막히는 고향이 아니옵기를!
[인터넷길림신문 2010-01-26 오전 7:3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