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차가운 하늘에서 하얀 꽃으로 내려왔다가 지상의 즐거운 손을 만나 사람이 된 당신, 당신의 이름을 눈사람이라고 합니다.
낮이면 개구쟁이들과 함께 무람없이 놀아주고 밤이면 나의 뜨락에서 부지깽이를
들고 홀로 밤보초를 서느라 수고도 많았던 당신인데 어찌 그렇게 조용히 기척도 없이 가시렵니까? 한마디 말도 없이 가시렵니까?
한오리 미련도 없이, 한푼의 욕심도 없이 그렇게 자신을 아프게 무너뜨리고 지워버리는 눈사람 당신! 손자놈이 둘러준 목도리와 내가 걸어준 수수깡안경 그리고 옆집소녀가 씌워준 비닐바게쯔모자까지 하나 빠뜨림없이 고스란히 남겨놓고 떠나가는 당신 눈사람!
가실 때를 알고 시간을 맞추어 자신이 서있던 겨울자리를 스스로 비우는 당신의 부끄럼없는 처사는 세상의 순리를 따르는 자만이 할수 있는 용단이요 미거인줄로 알겠습니다.
눈사람 당신은 그렇게 흔적없이 사라져도 아름다운 추억은 티없이 하얀 그리움으로 남아있을것입니다. 당신이 떠나간 자리에 움트는 파아란 잔디의 노래를 아시겠지요?
그럼 부디 잘 가세요, 눈사람 당신이여!
그리고 다음 겨울 또다시 만나요, 눈사람 당신이여!
배추김치
배추김치는 우리네 밥상에서 빠뜨려서는 안되는 밥반찬이다. 콩으로 만든 된장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배추김치를 마주하면 산악민족인 우리네 선조들의 삶의 지혜와 녀인들의 야무진 손맛을 알수 있다.
얼얼하면서 시원하고 새콤매콤에 거뿐함이 고르롭게 조화를 이룬 배추김치가 세계식품시장에서 그 우수성을 인정받은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비타민을 비롯한 다양한 영양성분으로 인체생리기능의 활성화를 돕는 종합성 보건식품이라고 정평이 났음에랴.
누군가는 배추가 김치로 되려면 다섯번은 죽었다가 살아나야 한다고 하였다. 밭에서 뽑힐 때 한번, 칼에 의해 배가 갈라질 때 한번, 소금물에 빠져 한번, 양념에 묻혀 한번, 움에 들어가 한번, 이렇게 다섯번 죽어야 제맛을 낸다는것이다. 그런데 그 제맛이라는것을 알리려면 또 반드시 사람의 입에 들어가 씹혀야 하니 그때가 바로 배추김치의 마지막 죽음이 아닌가싶다.
한번도 아니고 다섯번, 여섯번 죽어야 참맛을 보여주는 배추김치!
한통의 배추김치가 이러할진대 오장륙부의 사람이 제대로 익은 깊은 맛을 낸다는것이 어찌 식은 죽 먹듯이 쉬울것인가. 적어도 배추김치보다 몇곱절 더 많이 자기를 죽이는 마음의 아픈 수련을 겪어야 할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마음그릇에 둥지를 튼 오기와 편견, 탐욕과 방종, 교만과 허위같은 사람의 정신을 썩게하는 모든 추접그러운 악습을 스스로 하나하나 모조리 죽일 때만이 비로소 진짜 사람내음과 사람맛을 낼수 있겠으니 말이다.
연변일보 20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