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말부터 일본침략자들은 “치안숙청 3년 계획”에 따라 동북에서 보기 드문 파쑈정책을 실시했으며 동북인민들의 항일유격운동을 백방으로 파괴하고 항일련군에 대해 련이어 토벌을 감행했다.
항일 유격구와 근거지는 엄중한 파괴를 입었다. 하여 항일련군부대는 인적이 드문 심산속으로 전이해야만 했다. 그들은 장백산 밀림에 비밀숙영지와 후방군사기지를 건립하고 간고한 유격전을 견지했다. 식량, 탄약 등 물자공급이 끊긴 역경속에서도 동북항일련군 제2군은 항일전쟁의 최종승리에 마멸할수 없는 공헌을 했다.
1938년 11월, 제6군은 제2방면군으로 개편된후 장백산항일유격구를 확장하기 위해 몽강에서 중조변경의 림강, 장백현 등지에로 진군, 완강한 혁명투지로 13도구, 7도구 목재경영소, 구가점, 15도구, 반절구와 이도강 등 전투를 벌렸다. 1939년 5월, 제2방면군 주력은 안도, 화룡현경내까지 왔으며 두만강을 건너 조선경내에서 적들의 거점을 습격하기도 했다. 6월초 다시 안도에 돌아와 두만강연안에서 선후로 동경동, 광평, 회풍동 등지(지금 화룡시숭선소속)의 적을 습격했다.
원 제2군 4사는 1938년 여름 우화전, 교하 등지를 돌면서 선후로 화전부얼하, 연길현 명원구 등지에서 적을 소멸했다. 1939년 음력설전, 제2군 4사 최현부대와 제1로군총부 및 경위려, 소년철혈대는 화전현회전자에서 합류했다. 이들은 3월과 4월 화전목기하, 돈화대포시하전투를 거쳐 6월 선후로 일본군 우시시마대좌부대를 소멸한 위당구전투와 안도현 한총구적거점을 소멸한 전투 등을 벌렸다. 이와 동시에 제4사는 우심정자에서 적으로부터 투항을 권하러 온 4명의 일본관원을 처결했으며 제2군 4사는 돈화, 안도, 연길 등 현에서 활동을 진행했다.
제2군 5사는 녕안, 왕청 일대에서 항일련군 제2로군을 배합하여 활동했다. 8월말, 액목에서 활동하던 제5사는 녕안에 돌아와 동경성 횡도하자에서 600여명 적군의 진공을 막아냈으며 적군 200여명을 사살했다. 1939년 봄, 제2군 5사와 제5군 2사는 연길 돈화에서 함께 활동했다.
[연변일보 201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