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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합군과 토공대(외1편)김송죽
 > 2010-3-6 14:50:00 조회 : 206 

( 조글로 2010 01 29 12 55 48 )

                                              

    이광인선생은 무정부주의자들의 제의를 수용하여 일떠세운 한족총련합회를 가장 반동적이 라면서 그것마저도 김좌진의 죄악으로 치부하는데 아무럼 그럴수가 있는가? 나는 우선 이광인선생이 그때의 한족총련합회라는 무슨 조직이였다는것을 알기나하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 누구던 그 조직의 “대강”을 연구해 보면 그것이 반동인가 아닌가를 분별하게 되는 것이다. 그 “대강”은 아마 소학생앞에 읽어도 알아볼것 같다. 그 어떤 정치를 목적해서 세운 조직인 것이 아니라 주도가 대중의 생()을 위하는 교민단합의 조직이였던 것이다. 제 교포의 사활(死活)을 지극히 념려해 생겨난 그 조직자체가 어쩌면 반동이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것이다. 조직자체에는 절대 죄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그 조직에서 주요인물의 하나였던 김종진이 반공사상이 깊어 호의로 찾아온 사람의 성의도 몰라봐주고 되려 비리성적으로 적의를 품으면서 악의적으로 조폭하게 나와서 일을 그르친데 있는건데 죽이겠거든(물론 죽였만) 그나 죽일것이지 왜 그런 사람과 결탁했느냐고 트집잡고 김좌진마저 죽일대상으로 점을 찍고 생명을 끝끝내 앗아낸것은 자랑할바가 못된다. 그것은 잘된일 아니다. 그를 찾아 자기의 의견을 피력하든지 아니면 항의라도 해봤더면 좋지 않았을가? 워낙은 호의를 품고 찾아간것이 김종진으로 하여 적의로 변한게 아니고 뭔가. 한데도 김좐진을 만나 담화한번 없이, 유감한마디없이 무작정 목숨부터 앗아낸 것은 생각이 짧고 요동치는 감정을 공제못한, 경험도 자격도 너무나 미숙했던ㅡ조선산당(화요파)의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수 없다. 그같은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개정하지 않으면 종당에는 남을 해치고는 자작지얼(自作之孼)의 경지에 이르기 마련인 것이다. 리광인선생은 이만한 상식도 없이 반동이요 뭐요 허투루 평하니 유감그럽다. 자기의 주장을 고집하면 그 한족총련합회의 대강을 내놓고 분석하면서 조목조목 “죄증”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만이 신사다운 학자풍이라고 본다. 내가 학자도 아닌 주제에 권념하니 어리석다고 여기겠지만.

 

   다음 또 한가지. 이광인선생은 김좌진이 중국 구국과 손잡았던 일을 끄집어내여 그것이 마치 죈것 처럼 피력하는데 력사지식과 자격을 소유한 교수님이겠는데 어쩌면?......

  간단히 그때의 형편을 돌이켜보고 시비를 하겠거든 계속하기바란다.

  김좌진은 시종 자기의 군사력을 이끌고 항전을 계속하려했다. 그런데 적에 비해 력량이 부족해 출격작전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차 마침내 1928 5월에 중국 구국군 13군사령 양우일(楊宇一)이 참모 손림(孫林)을 김좌진장군에게 특파하여 그를 초청했던것이다.

   김좌진 장군은 바라던 일이라 흔연히 나섯다 그는 왕청현 석두하자에 있는 13군총사령 양우일을 만나 그와 공동대적의 필요성을 진진하게 론했다. 그리고 중국국민당 만주공작책임자인 공패성(貢沛誠), 그리고 또 23,000여명의 기병과 보병을 거느리고있는 악유준(岳維峻), 역시 그와 비슷한 병력을 보유하고있는 사가헌(史可軒) 등과도 한자리에 만나서 조중련합전선을 구축할 협의를 했다.

   이번 중국측과 련계를 달아줌에는 유일당건립에 힘쓰고있는 연병호(延秉昊)의 노력이 적지 않았다.

   중국정계의 유력자며 또한 재벌이기도 한 공패성은 중국정부의 요로(要路)에 밀사를 보내여 이번 일을 알리는 동시에 장작림이 어떤 태도를 취하더라도 이 공동의 작전을 인증하고 원조하라는 청원을 하는 한편 자기의 것과 후원가들의 재력을 합해 왜적토벌군의 무력을 갖추기에 있는 힘을 다하였다. (지금돈 250만딸러가량.)

   이번 <<韓中聯合軍>>을 조직하여 독립군은 표면으로는 중국중앙군 제8군이라는 군호를 사용하기로 하고 군자금 400만원과 기타 무장의 조달을 받기로했다.

   그런데 예상밖의 일에 그만 뒤틀어지고말았다. 얼마안가서 장작림이 이 일을 알고는 즉시 정예부대를 출동하여 준비중에 있던 토벌군의 무장을 해제하는 한편 악유준과 사가헌 두 장군을 체포하였을뿐만아니라 공패성은 주동분자라하여 즉석 3년판결을 내려 감옥에 넣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거사는 요람람에서 그만 요절당하고 만 것이다. 과연 맹랑한 일이였다!

국공량당도 한때 손잡고 구국항일을 한적이 있다. 리광인선생은 그래 중공력사의 그 한단락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치는가? 그때는 중공의 결책이 틀린것이였다고 비난하지야 않겠지? 1928, 그때 조선공산당(화요파)가 그래 무슨 항일무장부대를 갖추고있었는가? 무력항쟁을 하여야 할 때였는데 그네들이 그래 김좌진의 독립군과 련합군을 결성해 손잡고 대적할 조건이나 갖추고있었단말이다? 나는 9.18사변이 일어나 일제가 동북을 침략해서야 그들은 중국공산당으로 전향해 피어린 항일전을 한 것으로 알고있다. 그것은 옳고 잘된일로 본다. 하지만 김좌진이 중국 구국군과 손잡고 련합군을 조직했다해서 그것을 죄악으로 여기고 살해했다면 틀린것이다. 자기들은 원쑤와 그렇게 싸워내지도 못하면서 항일에 나선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빼앗은 것은 대단한 착오고 죄악으로밖에 되지 않는다. 량환준의 증면만 믿고 그것을 잘된 영웅행동으로 부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독립군의 “토공대”가 공상당을 마구살해했다는데 그건 대체 어느때의 일이였는가? 김좌진이 대체 조선공산당과 무슨 원쑤진 일이 있어서 제가 거느리는 독립군을 “토공대”로까지 편성해 토벌에 나섯단말인가? 나는 “한국독립군사”를 읽어보았는데 거기에는 김좌진이 살았을적에 자기가 지휘하는 독립군으로 “토공대”를 조직해 공산당토벌에 나섯다는 것이 없었다. 력사교수인 이선생은 어느문헌을 보고 그러는지? 혹시 애비가 죽자 등단한 동북군벌 장항량이 <<中韓共産黨取締法>>을 제정해 공산당사람들을 “토벌”할때의 일을 념두에 두고 말하는건 아닌지? 그걸보고 말하면야 옳지. 남대관과 백남준이를 골간으로 하는 한패의 “토공대”대가 어느날 비밀리에 만주 <<공비토벌대장>>인 길림성 군법처장 왕계(王啓)를 찾아 떠나서 확실히 동족을 살해하는 죄악의 길을 걸은적이 있으니까. 한데 그것은 김좌진이 살해된 후의 일이다. 독립군인 고강산(高崗山)은 김좌진장군이 피살된 이틑날로 복수를 단행코저 “독립군모험대”를 조직해갖고 나섯다. 중광단이 조직되였던 그때로부터 대한군정회, 북로군정서를 거쳐 시종 김좌진을 적극돕고 따르었던 이 대종교도는 구천에 간 장군의 원혼을 부르면서 워쑤를 갚고야말리라 맹세했던 것이다. 내보게는 이광인 선생은 지금 사후(死後)에 발생한 일마저 끌어다가 김좌진을 죽여야만했던 리유로 만드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게 하는건 신사적이되는 같지 않다. 아무리봐야 도리에 맞지 않으니까. 시비할줄을 아는 것 같은 선생이 어쩌면?..... 력사를 연구하는 사학자의 각도에서 한번다시 사색하기바란다. 왜서 전에는 없었던 참혹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김좌진장군이 피살되여서는 극심하게 발생했는가를. 이에 대해 매일 력사롸 씨름하는 리광인선생은 그래 생각해보지 않았단말인가? 미처못했다면 지급이라도 생각해보는게 좋겠다. 자작지얼(自作之孼)이라는 어구가 있는데 한번 사전도 뒤져볼 것을 권고하는바이다.

 

                                                          2010. 1. 29

 

        사실을 뒤섞지 말자

                         

                           리광인선생의 글을 읽고

      (조글로 2010년 01월 30일 21시 23분 17초 )

 

   리광인선생, 선생이 올린 <<남대관 권수정ㅡ 이자들은 누구인가?>>를 읽어봤습니다. 먼저 리선생의 글에서 첫부분을 따옮겨봅니다.

 

   <<1929 7, 신민부에 이어 조직된 “재만한족총련합회”는 본부를 해림현 산시에 두고 그 아래에 의사기관과 집행부를 설치하면서 한인들의 지방 “자치조직”을 설립하기 위한 활동, 재만한인 교육활동, 무장활동을 주요한 활동으로 내세웠으나 무장활동의 선차적인 과업은 공산주의운동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원신민부 군정파와 재만 조선무정부주의자련맹 무정부자들간의 련합산물인 재만한족총련합회는 무정부주의를 표방한 철저한 반일, 반공단체였다.>>

   이상 글에서 리광인선생은 “한족총련합회”에 대해 어느만큼 료해하고있다고 인정합니다.

   한데 내가 의문부호를 다는 부분은 문장에서 줄친 두구절입니다리선생은 (1).무장활동의 선차적인 과업은 공산주의운동에 대항하기위해서였다. (2).재만한족총련합회는 무정부주의를 표방한 철저한 반일, 반공단체였다. 하는데 그런 증명사료를 어디에서 얻었습니까? 솔직히 말해 나는 김좌진전을 쓸때 이 대목에 와서 집필을 멈춘적이 있습니다. 무정부주의자였던 김종진은 철두철미한 반공분자였습니다. 김좌진역시 <<자유시사변>>을 겪고나서는 공산당이라면 싸잡아 나쁘게 보면서 가까이 하지 않았으니 반공적이였다고 볼수있습니다. 내가 이같이 딱 찍지 않고 “볼수있다”고 애매하게 긍정하게되는건 그의 그 어떠한 담화에서도 행동에서도 뚜렷이 “반공”적인것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리을규가 쓴 <<시야 김종진>>에도 전혀 언급이 없었습니다. 그래 자꾸 의문이 갔던겁니다. 그러다가  나는 결국 그가 시종 부르짖고 바라는것이 바로 “대동단결”이였으니 이 새로운 기구를 세움을 계기로 장차 공산주의계렬의 단체들도 포섭하려 했으리라 여긴 것으로 추리가 된겁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는 것을 책에 써넣지 않고 그 대목에 회피하고말았습니다. 이같이 업숙한 문제는 더더욱 증명이 필요하니까.

 

   이때의 백야 김좌진장군이 바란것은 만주에서 살고있는 조선동포들을 모두가 하나의 강대한 자치집단으로 묶어세워 포악한 지주와 맛서고 안거락업을 하면서 항일구국을 하자는 생각뿐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때 북만에는 <<중동로사건>>이 발생했던 겁니다. 그래 형세는 몇 개월간 어지럽다가 11 22일 쏘련과 중국 량측은 울라지보스또크에서 10조의 협약을 맺어서야 중동로는 원상태대로 다시금 회복되였던겁니다. 바로 그 사건시기에 한족총련합회가 설립된거고 독립군의 민족주의자들은 사건에 삐칠일이 없으니 까딱 움직이지 않고 보고만 있으면서 조직건설을 위해 선전활동을 했던것입니다그래서 “철두철미한 기회주의”라는 비난을 받기까지 했지만 김좌진이 살아 공산당토벌에 나선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앞의 문장에서 이미 언급한게 아닙니까.

    1929년ㅡ1931년사이 이들 재만한족총련합회는 자기들의 반일, 반공방침에 따라 동북군벌과 손을 잡고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을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는데.....”라고하는데 대체 어느 력사문헌에 그렇게 기재돼 있습니까, 어디 봅시다. 리선생의 말과 같이 “한족총련합회의 주요성원들”이 “동북군벌과 손잡고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을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것은 김좌진장군이 살해된 후의 일입니다. 확실히 그런적이 있습니다. 김장군의 죽음에 복수를 품고 그같이 同族相殘을 하는 죄악적인 행동을 감행한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독립군의 그같은 짓도 묵과한다는데 나는 묵관적이란 없습니다. 내가 쓴 전기를 읽어보면 알게되리라 믿습니다. 책이 여벌이 없어서 보내지 못함을 량해하시오

   이미도 말한바있지만 중동로선에서 신민부의 규찰대가 의심나는 사람은 마구수색하거나 체포하고 지어는 때리며 협박한적이 있었습니다. 기지에 잠입하는 밀정을 잡아내기위한 응분의 처사였는데 그것이 너무 조폭하고 지어는 잔인했을수도 있다고 봅니다. 한데 그것이 딱 공산당사람을 잡아내느라 그랬다고는 보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때는 민족주의자들인 독립군이 공산계렬의 집단이나 개인과  그토록 반목할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니까. 김좌진이 살해되기 전에는 모순이 그토록 악화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공산당사람이 수색당했을 수도 붇잡히였을 수도 억울하게 매를 맞으며 당했을 수도 있었겠지. 허나 나는 독립군이 전문 공산당을 잡느라고 그랬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런 행동이 있었다면 김좌진이 살해된 후였을겁니다. 이를 갈면서 북수를 하자고들었으니까.

   맞지 않은 의견은 다시 조용히 나눠봅시다.  

                               

                                김송죽   2010.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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